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한국 목조건축의 양식

한국의 목조건축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구(有構)가 고려말의 것이며, 그 이전의 건축물은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는 형편이므로 분류하여 보면 , 주심포식과 다포식으로 구분하며 세분하면, 여기에 익공식을 포함시킨다. 주심포식은 주지하다시피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는 형식이며 다포식은 기둥 위에는 물론 이려니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놓아 처마의 하중을 받도록 한 형식이다.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지만 또 하나의 양식은 주심포식과는 구분적으로 다른 것을 한국에서는 익공식이라 한다. 여기에 또 한 가지를 넣자면 소위 절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주심포계 다포식, 다포계 주심포식, 주심포계 익공식,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목조건축양식 구분은 공포를 기준으로 분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목조건축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요소가 이 공포 부분이며, 이 부분이 가장 시대상을 예민하게 표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주심포식이나 다포식, 그리고 익공식 등의 세분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기도 하다. 어느 학자는 시대를 기준으로 나누기도 하고, 어느 학자는 공포의 구성 내용을 가지고 나누기도 하여, 어떻게 보면 통일성이 없어 보이나 그 나름대로의 이론을 갖고 있어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고 해서 크게 잘못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현존하는 여러 양식의 원류를 추구하는 데는 문제가 되는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 큰 문제의 하나가 한국 주심포식의 동맥을 어느 곳에 둘 것인가이며, 다포식 역시 마찬가지이고, 익공식도 국내에서 그 원류를 찾을 것인지 아니면 국외에서 찾을 것인지를 확실히 해야 하는데, 이는 주변국인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비교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 연구란 그리 쉽지 않고 특히 고대 건축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어려운 점이 있다고 본다.

▣ 주심포식

고려말 건물로 현존하는 것은 봉정사 극락전(1897년 수리공사시 묵서명이 발견되었는데 1363년 지붕 보수가 있었다는 기록이 발견됨. 이 건물은 13세기로 추정), 부석사 무량수전 (1376년 중건 기록이 있으나 13세기로 추정), 수덕사 대웅전(1308), 강릉 객사문(14세기), 부석사 조사당(1377년),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1375년)등이며, 북한에는 성불사 극락전(1321년 창건, 1530년, 1644년 중건, 1950년 전쟁 피해, 전후복구, 퇴간은 조선시대 후 보수), 응진전(1327년 창건, 1530년 중건) 등이 있다. 조선시대 초기 건물로는 삼보 죽서루(1403년), 무위사 극락전(1430년), 관룡사 약사전(1473년), 송광사 하사당(15세기) 및 국사전(15세기), 도갑사 해탈문(1473년) 등이 있다. 위의 건물들은 13세기에서 15세기의 건물로 중국의 신양식이 도입되는 중요한 시기이며, 이들 건물을 중심으로 그 특성을 알아보기로 한다.

우선 축부에서

1. 기둥의 경우

· 기둥에 배흘림이 있는 것 ; 봉정사 극락전 외 대부분
· 기둥에 배흘림이 없는 것 ; 송광사 국사전(가장 약함)

2. 창방 뺄목의 형상

· 뺄목 끝을 직절(直切)한 것 ; 봉정사 극락전
· 뺄목 끝을 초각(草刻)한 것 ;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송광사 국사전 및 하사당, 무위사 극락전
· 뺄목이 없는 것 ; 무석사 부량수전
· 뺄목이 첨차형 ; 부석사 조사당


공포의 구성 내용을 보면

1. 주두의 경우
· 주두의 굽이 곡선인것 ; 봉정사 극락전
· 주두의 굽이 곡선이고, 굽받침이 있는 것 ;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 주두의 굽이 사절(斜切)되고, 굽받침이 없는 것 ; 부석사 조사당 외 대부분의 건물

2. 두공의 경우
· 두공이 도리 방향이고, 산미 첨차는 보 방향인 것 ; 수덕사 대웅전
· 도리 방향은 두공이고, 보 방향은 교두형 첨차인 것 ;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조사당

3. 헛첨차의 경우
· 헛첨차가 없는 것 ;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수석사 무량수전
· 헛첨차가 있는 것 ;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전, 은해사 거조암 연산전, 부석사 조사당, 무위사 극락전, 송광사 하사당 및 국사전, 정수사 법당 등 다수

4. 행공첨차의 경우

· 행공첨차가 있는 것 ;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전, 무위사 극락전, 송광사 하사당 및 국사전, 정수사 법당, 관룡사 약사전 등 다수
· 행공첨차가 없고 단장여만 있는 것 ; 봉정사 극락전
· 행공첨차가 없이 통장여가 직접 외목도리를 받치는 것; 부석사 조사당, 도갑사 해탈문

5. 주심에서의 첨차짜임

· 소첨위에 대첨을 놓은 것 ; 부석사 무량수전(예가 드뭄)
· 중공 위에 장여를 놓고, 소첨을 놓은 것 ; 부석사 무량수전
· 소첨만을 놓고 정여 위에 소첨을 놓은 것 ;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가구의 구성 내용을 보면

1. 도리와 보와의 관계

· 보 위에 직접 도리를 얹은 경우; 수덕사 조사당, 무위사 극락전
· 보와 도리를 분리한 경우;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강릉 객사문

2. 내부 공간의 구성

· 고주를 세운 경우
- 1고주 ; 봉정사 극락전
- 2고주 ;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 고주가 없는 경우; 부석사 조사당, 무위사극락전, 송광사 국사전

3. 대공의 형상
· 화반대공 ; 봉전사 극락전, 무위사 극락전, 송광사 하사당
· 포대공 ;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부석사 조상당 (종보는 판대공),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종보위에 동자대공), 도갑사 해탈문
· 판대공 ; 관륭사 약사전(대들보위 포대공)
· 동자대공; 송광사 국사전(종보위 판대공)

4. 합장재의 유무

· 솟을합장을 사용한 것 ;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랑수전, 수덕사 대웅전, 성불사 극락전, 부석사 조사당,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무위사 극락전, 도갑사 해탈문

· 솟을합장이 없는 것 ; 강릉 객사문(원래 있었을 가능성이있다.) , 관룡사 극락전, 송광사 국사전 및 하사당

5. 천정의 형상

· 연등천정; 봉정사 극락전 외 대부분

· 우물천정; 무위사 극락전(후보수 가능성), 송광사 국사전(후보수 가능성)

위의 내용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의 주심포식 건물이 가지고 있는, 서로 같거나 다른 부분들을 비교하기 위해 나열해 본 것들이다. 이들 요소에서 각 주심포식 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대체적인 윤곽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구분해 본 것은 서로 다른 건물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고, 나아가 서로 다른 건물군들 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기초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내용을 종합하면 대개 아래와 같은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축부에서 기둥의 배흘림 내용을 보면, 주심포식은 봉정사 극락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에 이 기법이 보이며, 특히 배흘림의 현저함은 고려말 건물에 두드러진다. 16세기 이후부터는 배흘림의 기법이 차차 쇠퇴하여 가는 경항을 볼수 있다.

창방의 뺄목 내용을 보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봉정사 극락전은 뺄목을 직절하여 아무런 초각이 되어 있지 않았다. 또 부석사 무량수전은 뺄목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이는 오히려 봉정사 극락전보다 앞선 기법을 보여준다. 이들 건물 외의 건물은 거의 뺄목끝을 조각하였고, 이 기법은 계속 후대에 계승되고 있다. 부석사 조사당을 보면, 뺄목이 첨차처럼 되어 측면의 헛첨차 역할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다음 공포 구성의 내용을 보면, 우선 주두와 소로의 형상에서 세가지 유형이 보이는데 봉정사 극락전은 주두굽이 곡면을 갖는 형상이고,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등은 모두 봉정사 극락전 주두 모양에 굽받침을 갖고 있는 형식으로 이러한 주두 모양은 고려 말에서만 보인다. 또 하나의 주두 모양은 다포건축에서 흔히 볼수 있는 굽 모양이 사절된 주두 모양으로 부석사 조사당에 보이며, 이 기법은 조선시대 주심포식에 널리 보급된다.

주두위에 놓이는 두공의 형식은 주두 위에 십자형을 짜는데, 이러한 열십자형 첨차를 두공이라 한다. 한국건축에서는 보 방향의 두공은 두공첨차라 하며 도리방향의 두공을 산미첨차라고 하며 도리 방향의 두공은 두공 첨차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주심포식 공포에서 이 두공의 형상이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 하나는 산미첨차 선단에 의장용 조각을 한 것이고, 수덕사 대웅전에 이 형상이 보이며, 또 하나는 도리 및 보 방향의 첨차를 동일도리 및 보 방향의 첨차를 동일한 형식으로 한 것인데, 이러한 것은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의 경우에는 도리 방향의 두공이 소첨과 대첨이 중첩된 소위 중공(重 )형식이며, 그 위에 장여를 보내고 그 위에 다시 첨차를 올려놓고 있어 다른 건물과 다르다.

수덕사 대웅전은 두공이 도리 방향의 단공이고, 그 위에 장여, 그리고 장여 위에 첨차가 하나 놓여 부석사 무량수전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헛첨차는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엇첨차를 갖고 있다. 고로 헛첨차가 없는 건물이 옛식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헛첨차의 원류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공포의 최선단 상부에는 외목도리가 얹히는데 이 도리 바로 밑에는 장여가 받치고, 장여 밑에는 행공첨차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 구성방법인데 행공첨차가 없는 건물이 있다. 이러한 건물은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조사당, 도갑사 해탈문 등인데, 이 중에서도 봉정사 극락전만이 단장여로 되었고, 나머지 두 건물은 통장여로 되었다. 행공첨차가 없는 공포는 중국에서 말하는 완전한 투심조(偸心造) 이며 행공첨차가 있다할지라도 투심조적성격의 공포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구의 내용을 보면, 우선 도리와 보와의 관계에서 보 위에 직접 도리를 얹는 경우와 보와 도리가 분리되어 있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부석사 조사당, 무위사 극락전 등에서 보이며, 후자의 예는 봉정사 극락전을 비롯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등 고려기 건물의 대부분에서 볼 수 있어 고려기 주심포 건물이 가지는 하나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건물 내용의 고주 사용은 1고주, 2고주의 예가 보이는데, 1고주는 봉정사 극락전, 2고주는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등이며 고주가 없는 건물로는 부석사 조사당, 무위사 극락전, 송광사 국사전이 그 예이다.

보 위의 대공 내용을 보면, 크게 4가지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분류는 화반대공, 포대공, 판대공, 동자대공이다. 화반 대공과 포대공은 주심포식의 특색으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이 두 가지 대공을 사용하였으며, 판대공과 동자대공은 주심포식 건물에서는 사용예가 드물다. 또한 솟을 합장역시 고려기 건물이 주심포식에서는 대부분 보이며, 조선 초기에 들어와서 차차 소멸하는 경향이다. 천정은 연등천정이 대다수이며, 조선초기의 것에 보이고 있는 우물천정도 후대에 부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상에서 고려말 조선초기의 주심포식 건물의 내용들을 중요부분만 개괄하여 보았다.


▣ 다포식

다포식 건축물중 건립연대가 확실한 것은 고려말의 심원사 보광전(1374년)과, 석왕사 응진전(1386년 창견, 1950년 소실)및 호지문(1392년 창견, 1950년 소실)등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북한에 있기 때문에 그 현황을 알 수 없다. 조선초기의 건물로는 역시 북한에 있는 개성 남대문(1394년), 평양 보통문 (1473년)과, 남한의 서울 남대문(1396년 창건, 1448년 중건), 봉정사 대웅전(15세기), 개심사 대웅전(1484년) 등이 있으며, 이들 다포식 건물들은 그 후 크게 유행되어 17세기 이후 사찰의 중요 건물은 물론이고, 궁궐, 성문, 분묘 등 많은 대형 중요 건물에서 보이고, 특히 주목되는 것은 고려 말이나 조선초기와는 달리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초기의 다포식 건물의 특징적인 요소를 간단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우선 축부에서

1. 기둥의 경우

· 기둥에 배흘림이 있는 것 ; 심원사 보광건, 석왕사 응진전

· 기둥에 배흘림이 없는 것 ; 개성 남대문 ,서울 남대문

2. 창방 뺄목의 형상

· 뺄목 끝을 직절한 것 ; 평양 대동문, 의주 남문

· 뺄목 끝을 초각한 것 ; 심원사 보광전외 대부분의 건물

공포에서

1. 공간포의 배치 내용

· 정면 중앙간에 1구 ; 석왕사 응진전

· 정면 중앙간에 2구 ; 심원사 보광전

· 정면 중앙간에 3구 ; 개성 남대문

· 정면 중앙간에 4구 ; 서울 남대문

2. 공포 외부의 구성

· 출목수

- 1출목 ; 평양 보통문, 개성 남대문

- 2출목 ; 봉정사 대웅전, 개심사 대웅전, 석왕사 응진전, 서울 남대문 하층

- 3출목 ; 심원사 보광전

· 중공 계심조 ; 심원 보광전외 대부분

· 중공 계심조에 투심조가 보이는 것 ; 평양 숭인전, 평양 보통문, 평양 대동문

· 우설형과 교두형 첨차의 사용

· 우설형만으로 된 것 ; 개성 남대문, 개심사 대웅전, 서울 남대문 하층

· 우설형과 교두형 병용 ; 심원사 보광전, 석왕사 응진전, 평양 보통문, 봉정사 대웅전




가구 구성의 내용을 보면

1. 보와 도리와의 관계

· 보위에 도리를 얹은 경우 ; 개심사 대웅전, 봉정사대웅전

· 보와 도리를 분리한 경우

· 종보 및 대들보를 병용한 경우 ; 심원사 보광전

2. 내부 공간의 구성

· 고주를 세운 경우

- 1고주 ; 심원사 보광전, 봉정사 대웅

- 2고주 ; 평양 보통문(중층)

· 고주가 없는 경우 ; 개심사 대웅전

3. 대공형상

· 동자대공 ; 심원사 보광전, 봉정사 대웅전

· 화반대공(파련대공 포함) ; 평양 보통문, 개심사 대웅전

4. 솟을 합장재의 유무

· 솟을 합장을 사용한 것 ; 심원사 보광전, 종정사 대웅전. 개심사 대웅전, 평양 보통문

5. 천정의 형상

· 연등천정 ; 심원사 보광전(외진은 빗천정), 개심사 대웅전

· 우물천정 ; 봉정사 대웅전(원래는 연등으로 추정)

이상 다포 건물의 중요 요소들을 형상별로 분류하여 보았다. 이들 내용에서 고려말 조선초기의 다포 건물를 요약하여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시킬수 있다.

즉, 측부에서는 기둥이 주심포 건물에 비해 배흘림이 적거나 거의 원통형이 기둥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말의 건물이 심원사 보광전과 석완사 응진전에는 배흘림이 보이고 있어 고려기의 다포식에는 배흘림이 사용되었지만. 조선초기부터는 배흘림이 약해지거나 소멸되는 경향을 읽을 수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배흘림 기법이 당 이후에는 강남에서 약간 보일 뿐 흔치 않으므로 이 기법은 주심포계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창방의 뺄목에 주목하면 평양 대동문은 직절하였고, 심원사 보광전 등 대부분의 건물은 초각을 하였다. 중국의 경우에는 평방과 직절한 평방 뺄목이 11세기 초에 나타나고(遼 나라 봉국사 대전. 1020년) 12세기 후반에는 뺄목을 고형(孤形)의 평방(현묘관 삼청전, 1179년, 공묘비정, 1195년)으로 만든 것이 보인다. 화북지방에서는 이후 계속 사용된다. 한국의 평방은 화북의 것과 대비되며, 중국 강남의 경우는 화북보다 이 보급이 좀 늦어져 원대에서도 일반화되지 못하였다. 창방의 뺄목은 중국의 경우는 직절의것이 10세기 말에 나타나도, 12세기중반에는 고형이 화북, 강남 등지에서 함께 나타나 원나라에도 보급되고 명, 청대까지 이어진다. 한국의 장방 뺄목 형상은 원대의 것과 흡사한 점이 많다. 창방 뺄목을 초각 없이 직절한 것은 앞에 예를 든 창방으로 평양 대동문(1576년)과 의주 남문(1521년)인데, 주심포 건물에서는 이미 고려 시대의 봉정사 극락전에 직절의 창방 뺄목이 나타나고 있어 연대를 올려도 무방하며, 이는 중국의 요대에 보이는 것과 대비할 필요가 있다.

공포에서는 우선 중앙간에 몇구의 공간포가 배치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며, 주상공포와 공간포의 형상이 같은지 아닌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다포식 공포는 주상공포와 공간포의 형식이 동일하며 중앙간의 공간포는 서울 남대문, 신륵사 조사당, 평양 보통문, 평양 대동문 등이 4구를 놓았고, 3구를 놓은 것은 개성 남대문, 석왕사 호지문, 평양 숭인전, 2구는 심원사 보광전, 봉정사 대웅전, 개심사 대웅전, 청평사 극락전, 1구의 건물은 석왕사 웅진전 등 다양하다.

중국의 다포건물을 보면, 오대산 불광사 대전(875년)에서 공간포를 볼 수있는데, 이 공간포는 주상의 공포와는 다른 공간포로 출목수가 적은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오대의 봉국사 대전(1020년)으로 공간포가 주상포와 같고 요대까지 즉 당, 오대, 요대가지는 중앙간, 협간의 공간포는 각각 1구씩 배치된 것 같다. 북송때에 들어와서는 공간포의 구성기법이 발달하여 남송, 금대의 건물에서는 중앙간에 2구의 공간포가 많이 사용되었고, 원대에도 13세기까지는 그때와 같았으나 14세기에 들어와 중앙 간에 3구, 또는 4구의 건물이 보이고 있다. 명대에서는 권위 건축에 6-8구의 중앙간 공간포도 보이고 있어, 시대가 내려옴으로써 중앙간에 1구 배치된 것은 요대까지 올려 볼 수 있는 기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므로, 석왕사 응진전(1386년)은 11세기가지 올려 볼 수 있는 양식이라 생각된다.

다음은 공포의 출목수(出目數)로 1출목에서 3출목의 것이 주로 보이는데, 1출목인 것은 평양 보통문, 개성 남대문이며 2층목은 봉정사 대웅전, 개심사 대웅전, 석왕사 응진전, 그리고 서울 남대문 하층이고, 3출목은 심원사 보광전이다. 이들 출목과 관련을 지어 생각해 볼 것은 출목과 직교하는 첨차로서 중국에서 말하는 계심조(計心造; 출목과 직교하여 첨차가 좌우로 전개 되는 형식)인지 투심조(偸心造; 출목이 있으나 출목과 직교되는 첨차가 없는 것, 즉 출목에서 좌우로 전개되지 않은 형식)인지가 문제인데, 한국의 고려말 조선초의 다포 건물은 평양숭인전(1467년), 평양 보통문(143년), 평양 대동문(1576년)에 투심조가 보일 뿐 이다.

부분 계심조이며 출목에 직교하는 첨차가 소첨과 대첨으로 소위 중국에서 중공이라 불리우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중국의 경우는 계심조보다 투심조가 앞서는 양식으로 보고 있으며, 계심조이며 중공형식인 것이 유행한 것은 12세기 이후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보면 현존하는 건물중 강남의 송,원대 건물중 완전한 중공계심조가 보이지 않고 있어 의문이지만, 일본의 다포가 남송의 말기에 강남 오산의 건축에 원류를 갖고 있다는 설을 인정한다면 이곳에도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부 학자는 다포식의 투심조가 주심포식의 투심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으나. 다포식의 옛 식 계통의 가능성도 있다고 보인다.


다음은 산미첨차의 선단 형상으로 우설형과 교두형 두 가지 형상이 있는데, 우설형으로만 된 것은 개성 남대문, 개심사 대웅전, 서울 남대문 등이 있고 우설형과 교두형을 함께 사용한 예는 심원사 보광전을 비롯하여 석왕사 응진전, 평양 보통문, 봉정사 대웅전 등에서 볼 수 있다. 우설형은 원래 하양의 선단 부분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 시대에는 하양 구조의 유구는 하나도 현존하지 않고 있어 실제 하앙구조의 건물이 있었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고, 다만 임진란 이후의 건물로 현재 전북 완주군의 화음사 극락전이 한 동 보일 뿐이다.

중국에서는 하양의 본래 기능을 갖고 있는 형식을 진앙이라하고 하양의 형식만을 나타내는 산미첨차 끝에 우설형을 조각한 형식을 가앙이라 한다. 따라서 한국의 우설형 다포식 공포는 거의가 가앙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가앙이 보이는 최초의 것이 태원 진사 성모전(1023-1102년)이며, 이 건물에 서는 진앙과 가앙을 함께 사용하였고, 가양만으로 된 건물은 산서 진성 야저촌 대묘 대제전(1169년), 강남 소주 현묘관 삼청전(1179)에서 보여, 12세기후반에서부터 가앙의 실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원대 이후 명,청대에서 많은 가앙 건물이 보이며 특히 청대의 건물은 거의 모두 가앙 건물이라는 사실이 조사되었다.




가구의 구성 내용을 보면, 우선 보와 도리의 관계에서 보 위에 도리를 얹는 경우와 보와 도리가 분리되어 보 위에 도리가 직접 놓이지 않고 보 위에 든 상태인데, 일반적으로 후자의 것이 옛식인 것 같다. 후자의 것으로는 심원사 보광전의 평주 상부에서 보인다. 심원사 보광전에서의 특이한 점은 공포 외부 선단 최상부애 첨차 하나를 올려 놓고 있는 것인데, 이로 인해 도리가 보 위에 뜨게 된 결과를 가져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부의 공간을 보면, 고주를 세운 경우와 고주를 없엔 내부공간으로 둘 수 있는데, 하나의 고주를 세운 건물로는 심원사 보광전과 봉정사 대웅전이 있고, 2고주는 중층 건물인 평양 보통문이 있다. 고주를 없앤 건물은 개심사 대웅전 등이 있다. 대들보나 종보 위에 얹은 대공은 동자주를 세운 데와 화반을 사용한 예가 보이는데, 동자주의 예는 심원사 보광전, 봉정사 대웅전 등에 보이고, 화반의 예는 평양 보통문, 개심사 대웅전 등에 사용되었다. 중국 건축의 다포식 전형은 동자주를 얹는것이라 보이므로 한국이 다포 건물에서 화반은 주심포의 영향이 아닌가 추정된다. 솟을 합장의 사용은 심원사 보광전, 봉정사 대웅전, 개심사 대웅전, 평양 보통문 등이며, 16세기이후 다포식에서는 이 기법이 나타나지 않는다. 천정은 연등천정, 우물 천정, 연등․우물겸용 등이 있는데 심원사 보광전은 내진 상부는 우물천정이고 외진은 판재의 빗천정으로 하였고, 개심사 대웅전은 연등천정이며 봉정사 대웅전은 현재 우물천정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는 연등천정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의 다포 건물이 10세기 이후부터 우물천정이 사용된 것을 보면 한국 다포 건물의 연등천정은 옛식이거나. 아니면 주심포식의 양식을 흡수한 영향이라 생각된다.

고려 말에서 조선초기의 주심포식과 다포식 건물들의 중요 요소들을 위에서 살펴 이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결 론

1. 기둥에는 배흘림 기법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2. 창방의 뺄목은 3종이다. 전혀 없는 것, 직절한 것, 초각한것 등이 있으며, 전혀 없는 것은 예식이고, 그 다음이 직절, 마지막 단계가 초각된 것으로 보인다.

3. 주두의 모양은 3종이다. 주두의 굽이 곡선인것, 굽이 곡선이면서 굽받침이 있는것. 굽이 사절된 것 등인데 앞의 2종은 현존 건물로서는 주두의 굽이 곡선인 것이 앞선 것이라 보는 경향이 많은데, 고구려 건축자료로서는 2종 모두 고구려 건축에 있었으므로 선후 관계를 확실히 구별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4. 주두의 직상 두공은 고리 및 보 방향 모두 같은 모양의 것이 있고, 또 하나는 보 방향의 것이 산미첨차로 된 것이 있는데 전자의 것이 옛 식이다.

5. 헛 첨자 없는 것이 옛 식이며, 이 헛첨자는 익공식이 나오게 되는 모체라 보인다.

6. 행공첨차는 없는 건물이 옛 식이며 통장여보다 단장여가 선행된다.

7. 중심에서는 첨차 짜임은 단공과 중공형식이 었고 이들형식에 단공이 또 하난 놓이는 형식이 있다. 이 형식이 옛 식이다.

8. 보와 도리가 분리된 것이 옛 식이다.

9. 감주법(減柱法)이 일부 보급된 것 같으나 조선 초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10. 대공은 환반대공과 포대공이 주로 사용되었고 조선초기가 되면서 판대공과 동자대공이 보이기 시작한다.

11. 솟을 합장을 갖춘 것이 주심포식의 전형이며 옛 식이다.

12. 천정은 연등천정이 정형이며, 우물천정은 조선초기부터 나타난다.


1. 기둥의 배흘림은 고려말기의 것에는 현저하게 보이나, 조선초기에 들어오면 약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2. 창방의 뺄목은 직절과 초각형의 두가지가 보이나. 선후 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3. 정면 중앙간의 공간포 배치는 1~4구가지의 여러 배치가 있으나, 1~2구의 배치가 옛 식이며 조선초에 들어와 3~4구 배치가 등장한다.
4. 출목수는 1~3출목이 보이나 2출목이 비교적 많다.
5. 공포의 구성은 대부분 중공계심조이며 계심조와 투심조 병용의 건물도 보인다.
6. 하앙구조는 보이지 않으면 소위 가양형식의 다포식의 주류를 이룬다.
7. 보와 도리와의 관계에서는 대부분 보 윙 직접도리를 얹는 기법인데, 심원사 보광전에서는 분리형과 직접 얹은 병용식이 보인다.
8. 고주의 사용은 1고주,2고주,3고주 무고주 등인데 1고주가 주류이다.
9. 대공은 동자대공이 전형인 것으로 보이지만, 화반대공도 조선 초기 건물에 나타난다.
10. 솟을 합장재는 조선 중기 이후 소멸된다.
11. 천정은 연등천정이 주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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