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한옥의 구조와 명칭


[ 대청 ]
안채의 안방과 건넌방, 사랑채의 사랑큰방앞의 넓은 마루를 '대청'이라 칭한다. 대청은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의식과 권위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며 각각의 방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오늘날 주택의 거실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여름철에 분합문을 서까래 밑에 내려진 들쇠에 걸어 올려 놓으면 대청은 열린공간으로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 되었으며 겨울철에는 분합문을 닫아 한기를 막고 대청공간을 아늑한 실내공간으로 만들었다. 안채에 있는 것을 안대청이라하며 사랑채에 면해있으면 사랑대청이라 한다.
대청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이기기위해 현명하게 고안한 가옥의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전면 또는 사방이 트여있어 엄밀히 말하면 실내라고 할 수 없다. 대청의 바닥은 상류주택에서 서민주택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우물마루가 쓰여졌다.

대청의 구조를 보면, 마당에서 대청으로 오르기 위한 기단이 있고, 그 위에 댓돌이 있다. 댓돌에서 바로 올라서면 대청 앞쪽으로는 대개 앞툇마루가 있다. 대청의크기에 따라 기둥의 수가 다른데 보통 대청의 크기는 2칸에서 8칸까지 다양하다.
안채의 안방과 건넌방, 사랑채의 사랑큰방앞의 넓은 마루를 '대청'이라 칭한다.

[ 안방 ]
전통주택에서 방은 열린공간인 대청과 반대되는 폐쇄적인 의미를 지닌 개인적인 공간이다.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전통가옥에서의 방은 잠을 잘때는 침대대신 따뜻한 구들 방바닥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낮에는 의자대신 방석에 앉아 지내는 좌식생활을 하도록 되어있는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바닥에 바로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방을 늘 청결하게 유지하였다. 방의 내부는 모두 벽지나 천장지를 발랐으며 바닥은 장판지로 마감하였다.

[ 사랑 ]
전통 사랑대청과 사랑방으로 이루어진 사랑채의 사랑방은 집안의 가장인 남자 어른이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는 방으로 남자들의 공간이다. 사랑채는 외부로부터 온 손님들에게 숙식을 대접하는 장소로 쓰이거나 이웃이나 친지들이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고 집안 어른이 어린 자녀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교육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부유한 집안의 경우는 사랑채가 독립된 건물로 있었지만 일반적인 농가에서는 주로 대문가까이의 바깥쪽 방을 사랑방으로 정해 남자들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 사당 ]
조상숭배의식의 정착과 함께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 안채의 안대청 뒤쪽이나 사랑채 뒤쪽 제일 높은 곳에 '사당'이라는 의례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보통 사당에는 4개의 신위를 모시는데 서쪽부터 고조의 신위, 증조의 신위, 할아버지의 신위를 모시며 마지막에 부모의 신위를 모신다. 각 위 앞에는 탁자를 놓으며 향탁은 최존위앞에 농았다. 대개의 중상류 주택은 가묘법에 따라 사당을 건축하지만 사당이 없는 집도 있어 그런집에서는 대청마루에 벽감을 설치하여 신위를 모셨다.

대개의 중상류 주택은 가묘법에 따라 사당을 건축하지만 사당이 없는 집도 있어 그런집에서는 대청마루에 벽감을 설치하여 신위를 모셨다.

[ 부엌 ]
찬방 또는 찬마루라고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의 주택의 부엌방과 다용도실 정도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반가나 중,상류 지방의 가옥에서 볼 수 있는 부엌과 인접한 공간이다.
부엌과는 문으로 연결되어 있어 부엌에서 조리된 음식을 이곳에서 상에 올려 안방, 사랑방 등으로 내갔으며 간단한 음식은 이곳에서 조리하였다.
이곳에는 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그릇, 식기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음식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도 쓰였다.

[ 부엌 ]
불을 지펴서 각종음식을 조리하는 공간인 부엌은 주로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에 안방과 바로 인접하여 위치하였으나 일부 대가들의 집에는 반빗간이라하여 별채로 독립시키기도 하였다. 전통한옥의 부엌은 작업 동선을 고려해볼 때 매우 불편한 구조를 지녔다.

부엌 바닥을 일반적으로 방바닥보다 75-90 cm 정도 낮게하여 아궁이에서 땐 불길을 방고래로 빨아들이도록 되어 있는'온돌구조' 때문이다. 부엌에는 2-4개의 아궁이가 있었으며 불을 때는 아궁이위 부뚜막에는 솥을 걸어두었다.

아궁이는 안방과 면한 벽쪽에 설치하여 음식물을 조리하면서 동시에 방을 데우도록 하였다. 부엌은 주택의 규모에 따라 안방과 건넌방에 각각 위치하는데 안방과 접한 부엌이 주된 조리 공간이었으며 건넌방쪽은 물을 데우는데 쓰이는 등 보조적인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 행랑채] (하인들의 거처)
부자집안에 있던 것이다. 행랑채는 하인과 수확물을 저장하는 부잣집에서 분리되어진 장소이다.

[ 별당 ]

거처하는 방이 있는 집채나 절의 주지나 강사(講師) 등이 거처하도록 마련한 방을 말한다. 사대부의 저택에서 볼 수 있는 별당은 주택의 본 건물과 떨어져 별채로 지어진 건물로서 내별당과 외별당으로 나눌 수 있다. 내별당은 할머니나 시집갈 나이가 된 딸의 거처로 안채에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 외별당은 일반적으로 대문 밖이나 안 담장 밖에 꾸며져 바깥주인의 휴양 및 사교의 장으로 쓰였다.

남성들의 전용 공간인 외별당의 경우 담장 밖 넓은 공간에 당(堂)·정(亭)·대(臺)·각(閣) 등의 옥호가 부여된 정원 건축물을 짓고, 못과 같은 수경을 꾸며 뜰과 함께 주위의 자연을 감상하면서 벗과 함께 휴양하는 공간으로 쓰였다. 이것은 정원건축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저택정원과 별서정원의 장단점을 절충한 이상형이다.

[ 찬방 ]

찬방 또는 찬마루라고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의 주택의 부엌방과 다용도실 정도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반가나 중,상류 지방의 가옥에서 볼 수 있는 부엌과 인접한 공간이다.

부엌과는 문으로 연결되어 있어 부엌에서 조리된 음식을 이곳에서 상에 올려 안방, 사랑방 등으로 내갔으며 간단한 음식은 이곳에서 조리하였다.

이곳에는 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그릇, 식기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음식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도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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